아, 좀 쉽게 풀어도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근본적으로 영화 얘기를 하고 있긴 한데 거기에서 뽑아낸 철학적 구조가 중심이 되니, 뭐 철학 용어가 나와도 어쩔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어쨌든 『필로시네마』는, 살짝 늘어붙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라는 부제처럼 온갖 스펙트럼의 탈주를 갖고서 진행되는 영화 이야기다. 인간은 뭐든 사유하기 마련인데 여기선 빠르게 동작하는 이미지에서 어떤 사유를 뽑아낼 수 있을까, 하는 게 문제가 된다. 그것도 탈주 를 ㅡ 삶으로든 삶에서든, 어느 쪽이든 간에. 그러니까, 이건 철학서다……. 근데 그 탈주 라는 게 사실은 에서(Maurits C. Escher)의 판화처럼 돌고 도는 것이라면? 그래서 어떻게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탈주가 당차고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건 우리가 쉬이 볼 수 있는 가시적 세계에 있는 것은 아닐 거다. 그런 의미에서 (책에 등장하는)영화들은 모방의 예술이 아니라 창조의 예술 ㅡ 점, 선, 면, 체가 빚어내는 가상의 이미지 ㅡ 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그런 정신사나움에 지나지 않겠지. 가상 같은 현실, 현실 같은 가상,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하이퍼리얼리즘이 난무하는 곳에서 어찌 탈주 하지 않고 배기겠나? 그런데 약간 우스운 측면, 막힘 이 없다면 탈주 또한 의미가 없고 전혀 아름답지도 않을 거다. 우리의 앎에 영향을 주는 현실, 가상, 타자의 임팩트는 몹시도 강력한데 거짓을 거짓이라고, 거짓을 현실이라고, 현실을 거짓이라고…… 이렇게 끊임없이 되묻고 사유하는데, 내가 과연 현실(혹은 가상)을 놓칠 수 있을까? ㅡ 「이러니 내가 널 못 잡아넣겠냐?」(영화 《공공의 적 1-1 강철중》에서 철중의 대사) 우리는 어떻게든 현실(가상)을 잡아 처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보는(볼 수 있는) 세계에 대해 칸트와 니체의 의견은 나뉘어지지만 둘 다 사유만은 고개를 주억거릴만하다. 「안경으로 바라본 세계와 맨눈으로 바라본 세계 중 과연 어느 것이 진짜일까?」(강신주, 『철학 VS 철학』, 그린비, 2010) 책에서 소개된 영화 《토탈리콜》(1990)만 봐도 시종일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묻지 않았나. 그런데 바꿔 보면 이게 참 매력적이다. 이렇게 황당하고 슬픈 질문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영화 와 철학 를 접목하여 새로운 의미 를 고찰해 본 책이다. 이러한 새로운 의미는 우리가 익숙하게 봐왔던 영화들이 철학자의 독특한 시선을 통해 낯설어질 때 생겨난다. 이 낯섦은 결코 멀어짐이 아니고 오히려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삶의 문제들을 보게 함으로써 우리를 삶과 더욱 가깝게 만드는 낯섦이다. 철학자는 영화에서 무엇을 보는가? 영화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직업, 가족, 연인, 도시 등,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억압하는 요소들일 수 있다는 점을 본다. 우리의 평균적인 일상은 우리에게 정해진 길로만 갈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영화에서 우리의 자신의 모습을 봄으로써 삶이 자신에게 얼마나 낯설게 다가오는지를 경험하게 된다. 철학의 시선은 영화를 통해 일상 밖을 보지 못하는 우리의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을 한다. 각 장마다 새로 삽입된 영화의 스틸 컷들은 본문과 긴장하면서 영화와 철학이 텍스트 속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낯설게 보기는 정해진 길에서 벗어나는 탈주의 조건이자, 탈주 그 자체가 된다.
블레이드 러너
복제인간과 안티-오이디푸스
머리말 │ 인간이란 무엇인가? │표상의 외부 │안티-오이디푸스, 혹은 ‘신의 죽음’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탈주-탈주
요리사, 도둑, 그의 아내 그리고 그녀의 정부
욕망은 어떻게 혁명과 조우하는가?
식당 앞에서 │식당의 구조 │욕망의 ‘주체’들 │욕망과 죽음 │욕망의 정치학
핑크플로이드의 더월
벽, 혹은 탈주의 철학
개요 │광기와 TV 사이 │벽 속의 벽돌, 혹은 사회적 상처 │분열증과 탈주 │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심판 │벽 밖으로?
모던타임스
자본주의와 유쾌한 분열자
‘모던 타임스’, 근대 혹은 근대적 시간 │대공황과 모던타임스 │모던타임스, 모던타임스 │컨베이어 벨트와 근대인 │근대적 공간과 유쾌한 분열자 │근대적 시간과 ‘모던 타임스’ │욕망의 유토피아 │사랑과 욕망 │분열자와 정신병
와호장룡
강호의 공간적 특성에 관한 고찰
화보 │강호의 공간적 특성에 관한 고찰
동사서독
그 멈춘 기억의 장소를 통과하는 인연의 선들에 관하여
사막과 산 사이의 공간 │인연의 연쇄 │기억과 신경증 │머묾과 떠남 │고유한 표현의 요소들
허공에의 질주
잠행의 시간, 잠행자의 공간
세 가지 선과 잠행 │잠행-기계 │잠행자의 징표 │잠행과 가족 │잠행의 시간성 │잠행의 공간
풀 몬티
자본주의와 남근중심주의의 옷을 벗기다
시선과 그 외부 │노동과 거세 │가족주의와 거세 │신체의 연대 │신체와 시선
길버트 그레이프
가족의 근대적 평면과 유목적 자유의 공간
가족영화 혹은 반-가족적인 영화 │근대가족의 탄생 │가족 안의 근대세계 │욕망의 정착적 평면 │유목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공간
토탈리콜
괴델적인 세계에서 주체의 동일성은 어떻게 가능한가?
주체와 동일성 │욕망과 계급투쟁 │현실과 모사가 뒤섞인 세계 │욕망과 동일성과 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