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 기자들과의 데이트
지난 여름의 기억
“왜 기자가 되고 싶은건가요?”
가슴이 턱 막혀온다. 별 생각없이 참가한 강연회에서 연사로 나오신 여기자가 나를 향해 왜 기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보고 있다. 잠시 당황한 나는 이내 예전부터 준비해왔던 말을 꺼낸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서입니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다만 숨겨둔 말을 모두 다 하지 않았을 뿐. ‘적당히 편하게 글을 써도 돈은 꽤나 들어오거든요.’라는 말이었다.
내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작년 여름 때부터였다. 지난 여름, 모 언론사에서 인턴기자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어쩌면 권력의 비리를 낱낱이 파헤치는 기자를 상상했었는지도 모른다. ‘내 기사를 보고 기업체에서 협박 전화가 들어오면 어쩌지?’라는 생각을 했었던 듯도 하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기자 생활이 힘들진 않았다. 사회부, 정치부로 간 선배들은 때마침 터진 바다이야기 사건 때문에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내가 들어간 부서는 조용하기만 했다. 나와 내 담당 기자선배가 하는 일이라곤 메일에 온 보도자료 중에 괜찮은 것을 추려내서 기사를 쓰던가, 아니면 기업체 홍보부 사람이 써달라는 기사를 쓰는 것이 전부였다. 취재원들은 잘 좀 써달라며 우리에게 적당한 정도의 대접을 해줬고 우리는 그들의 이야기를 충실히 써주면 됐다. ‘좋은 게 좋은 것’이었으니까. 그다지 힘들게 일한 것 같지 않지만 월급은 내가 쉽사리 만져보지 못할 정도로 큰 돈이었고 그만큼 한 달의 기자 생활은 나에게 ‘유쾌한’ 사회 경험이었다.
그렇게 인턴기자 생활을 끝내고 ‘기자도 제법 할만한 직업이군’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조금 이상한 소식이 들려왔다. 시사저널 기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자가 파업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라 호기심을 갖고 이런저런 정보를 찾아보았다.
시사저널 기자들의 파업을 하게 된 계기는2006년 6월에 있었던 기사 삭제 사건 때문이라고 한다. 편집국에서는 삼성 이학수 부회장의 인사 전횡 의혹을 다룬 기사를 올려 보냈는데 금창태 사장이 아무런 통보도 없이 삭제해 버린 것이다. 이에 항의한 이윤삼 편집국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다른 시사저널 기자들도 사장에게 항의를 했다. 금창태 사장은 항의를 주도한 장영희, 백승기, 노순동 기자에게 출근 금지 징계를 내렸고 시사저널 기자들은 노조를 조직해 사장과 맞섰다. 12월 15일 기자 측과 사 측간의 단체 협상이 결렬되면서 시사저널 기자들의 총파업이 시작된 것이다.
신기했다. 내가 상상해왔던 거대 권력을 비판하는 기자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신기했고 고작 기사 한 꼭지 사라졌다고 편집국장이 사표를 내고 기자 전체가 파업을 하는 것도 신기했다. 나는 그들에게 호기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들이 펴낸 《기자로 산다는 것》이란 책을 샀다. 책의 첫 페이지를 여는 순간, 그들과 나의 데이트는 시작되었다.
첫째 주, 기자로 산다는 것
“김은남 씨, 스스로 밥값은 한다고 생각해?”
나와 시사저널 기자들과의 첫 만남은 거칠었다. 서명숙 편집장의 직설적인 비판은 김은남 기자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만큼 혹독했다. 뒤에서 우물쭈물하던 나는 김은남 기자의 자리로 가서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괜찮아 괜찮아. 한 두 번도 아닌 걸 뭐. 내가 글을 못써서 그러거지.”
눈가에 눈물을 닦은 김은남 기자는 이내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인터뷰이에게 다시 전화를 걸고 다시 취재를 나갔다와서는 글을 완전히 새롭게 고쳤나갔다. 다른 회사였으면 퇴근하고도 남았을 시간인데도 김은남 기자는 자정이 지나도록 퇴근을 하지 않고 글을 써내려갔다. 서 편집장의 불호령이 두려운 것은 다른 기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기자들도 ‘밥값’을 하기 위해 자정을 넘겨가며 취재를 하곤 했다. 김상익 전 편집장은 시사저널 기자들은 3~4시에 퇴근해 잠깐 눈을 붙이고 바로 8시에 출근하는 날도 숱하게 많다고 귀뜸해 줬다. 다음날 서명숙 편집장은 다시 김은남 기자를 부른다. 어제보다 목소리 톤이 더 높다.
“김은남, 이리 와봐,”
서 편집장의 목소리 톤을 듣곤 얼굴이 활짝 핀 김은남 기자는 서 편집장에게 기사에 대한 조언을 받으며 생글생글 웃었다. 그리고 잠시 쉬는 시간에 나에게 서 편집장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김은남’과 ‘김은남씨’의 차이가 이런거야. 김은남이라고 부를 때에는 서 편집장이 기사에 만족했다는 뜻이거든. 완벽주의자 서 편집장에게 칭찬 들을 때면 그동안의 괴로움이 싹 사라져 버리지.”
“아무리 그래도 어제는 말이 좀 심했어요. 밥값은 하냐니..”
“아냐. 김국은 더 심했어. (이들은 김훈 전 국장을 ‘김국’이라 부르고 있었다.) 입사한 첫해 여름날 집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전화가 온거야. ‘지금 자빠져 잠이 오냐? 너네가 그러고도 기자야?’라고 말야. 수해가 났는데 밤을 새서라도 현장에 달려갔어야지 어떻게 집에서 잘 생각을 하냐는 거지.”
“기자도 사람인걸요. 잠은 자야죠~. 솔직히 보도자료 나오는 것만 가지고도 수해가 났다는 기사는 쓸 수 있을텐데..”
“김국은 그런 걸 싫어했어. 현장을 떠나 탁상에서 논한 글을 ‘기사’라 우기는거 말야. 기사의 출발은 현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편집장들이 우릴 다그치는 거야. 기자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거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니까.”
“그렇게 힘든 생활, 견뎌낼 수 있으세요? 기자로 산다는 것은 그렇게 힘든 일인가요?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 하고, 사건이 터질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 나가고, 글을 쓰느라 퇴근도 못하고, 돈도 그렇게 많이 받지 않잖아요!”
김은남 기자가 말없이 웃고 있을 때 옆에 있던 성우제 기자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견뎌내니까 이렇게 살아있는 거겠지.(웃음) 우린 돈을 생각하며 기자를 하는 사람들이 아냐. IMF때 시사저널이 망했을 때 대부분의 기자들은 월급도 제대로 못 받으면서 기자 생활을 했어. 돈을 위해서 기자를 하는 것이라면 대부분 회사를 나갔겠지. 사람들이 왜 이렇게 고된 생활을 하면서도 시사저널에 남아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거야. 시사저널 기자들에게는 ‘기자로서의 자존심’이 있다고, 그게 시사저널을 시사저널답게 만들어주는 힘이지.”
그들과의 첫째 주 만남은 이렇게 끝났다. ‘기자로서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기자로 산다는 것’이란 도대체 어떻게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나에게 전해주면서 말이다.
둘째 주,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하다
두 번째로 나를 맞이해준 사람은 이은석 사건을 취재하고 있었던 고제규 기자였다. 나는 고제규 기자를 따라 이은석 사건을 취재하러 갔다. 당시 이은석은 부모를 토막살해한 혐의로 사람들의 집중을 받고 있었다. 경찰서를 가득 채운 기자들은 이은석에게 질문을 쏟아냈고 이은석은 아무 말도 못한 채 “죄송합니다”만 연발할 뿐이었다. 질문을 던지는 것은 기자였지만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는 것 역시 기자였다. 이은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지만 기자들은 마감시간에 맞추어 기사를 작성하고는 모두 경찰서를 나왔다.
“음,, 아무래도 이은석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을 것 같아요. 형사가 정신 이상인 것 같다고했는데 우리도 그렇게 쓰고 다른 취재 가는 건 어떨까요?”
골똘히 생각에 잠긴 고제규 기자에게 내가 가자고 말을 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혼잡했던 경찰서에는 이제 경찰 몇 명과 고제규 기자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취재나올 때 문정우 편집장이 그런 말을 하더라. ‘등록금을 안준다고 부모를 죽인다라,, 이상하지? 한번 확인하고와’라고. 우린 지금 이은석이 부모를 죽였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사실을 만든 사실, 그러니까 ‘팩트’를 못 찾았잖아. 가자. 한번 확인해볼 게 있어.”
우리는 해가 지도록 이은석의 집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은석의 집은 물론이고 이웃집, 출신 고등학교, 대학교, 주변의 비디오 대여점도 샅샅이 뒤져보았다. 말 그대로 발로 뛰는 취재였던 것이다. 함께 돌아다니면서 고재규 기자는 시사저널의 ‘팩트 중심주의’에 대해 말을 해줬다. 시사저널에서는 ‘팩트 중심주의’라는 원칙을 지킨다. 사실을 확인하지 않고서 기사를 쓸 순 없다는 것이다.
이은석의 단골 비디오 가게에서 그가 보았던 영화 목록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은석이 가입한 영화 동호회를 알아내어 그의 일기를 읽어볼 수 있었다. 이은석의 친구, 이은석의 형과도 이야기를 하면서 사건의 퍼즐을 차례차례 만들어갈 수 있었다.
몇 일이 지나고 고제규 기자의 기사는 시사저널의 커버 스토리로 실렸다. 기존 일간지들의 ‘정신 이상자 이은석은 등록금을 안준다고 부모를 죽였다’라는 기사와는 다른 “이은석은 어릴 적부터 부모로부터 학대를 받았다. 이은석은 가해자지면 또한 피해자이다”라는 기사가 나간 것이다. 이러한 기사와 함께 연세대 이훈구 교수 및 김수환 추기경 등의 이은석 구명 운동이 시작되었고 이은석은 사형에서 무기 징역으로 감면받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순전히 고제규 기자 덕분은 아닐 테지만 ‘사실’을 찾아내기 위해 발로 뛴 고제규 기자가 큰 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고제규 기자를 보며 한참동안 곰곰히 생각하던 나는 문정우 편집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근데 만약 이은석이 정말로 정신 이상이었으면 이 모든 게 헛수고가 되지 않았을까요? 다른 기자들처럼 기정 사실로 확인된 것은 그러려니하고 받아들이면 되는데 굳이 모든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힘들게 발로 뛰어야 하나요?”
문정우 편집장은 이런 말을 해줬다.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한 법이다. 기자가 설렁설렁 취재하고 기사 써봐라. 그걸 읽는 독자는 괜히 시간만 낭비했다는 생각에 낭패감만 들 거야. 당신이 그렇게 고생해서 취재하고 쓴 기사라면 독자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 거야.”
기자가 고생해야 독자가 행복하다,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너무나도 쉽게 잊어버렸던 진리였다.
셋째 주,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는 이상한 기자들
“이거 받으면 우리는 회사에서 잘리니까, 이왕 주실 거면 평생 먹을 월급을 주시오.”
다른 언론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일이었다. 기업체 사장과의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 자연스럽게 봉투를 들고 온 비서에게 성우제 기자는 봉투를 거부하며 평생 먹을 월급을 달라고 말했다. 기자에게 촌지를 주는 것은 사회에서 관행처럼 이루어진다. 이렇게 촌지를 거부하는 기자는 오히려 ‘유별난’ 사람이다.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나는 다른 기자들도 이러는 지 성우제 기자에게 물어보았다.
“이숙이 기자가 그러 말을 하더라. 하루는 호텔에서 DJ와의 만찬을 가졌데, 그날 방에서 쉬려고 하는데 DJ 비서가 봉투를 들고 찾아왔다는 거야. 이숙이 기자는 그냥 가시라고 하고 비서는 그냥 받으시라고 하고 한참동안이나 실랑이를 벌였나봐. 결국 끈질긴 비서에 굴복한(?) 이숙이 기자는 봉투를 받고는 거기에 자기 돈을 조금 더 보태서 DJ에게 만년필을 선물했데. 허허허.”
“그냥 주겠다는데 받으시죠. 왜 굳이 거부하는 거에요?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요? 하하”
“시사저널에서는 촌지 받는 것을 금지한다니깐. 뭐, 그 쪽에서 평생 먹을 월급만 준다면 받겠지 하하. 한 가지 재밌는 것은 내가 봉투를 안받겠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부분 ‘더 큰 돈을 원하나?’라고 생각한다는 거야. 사람들이 훨씬 더 두꺼운 봉투를 갖고 올 때가 제일 난감하다니깐.”
회사에 도착하고 나서 오늘 겪었던 독특한 일을 다른 기자들에게 이야기해주는데 사람들은 내 말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긴, 인터뷰이가 촌지를 주고 그 촌지를 거부하는 것은 그들에게는 일상이었을 테니 말이다. 내 말에 맞장구를 쳐준 것은 한병구 광고부장이었다.
“시사저널은 촌지를 거부하는 정도가 아냐. 눈 앞에 있는 광고도 걷어찬다니깐. 다른 언론들처럼 적당히 좋게 좋게 써주면 광고도 쉽게 들어올 텐데, 우리 기자들의 글 속에는 언제나 가시가 있다니깐. 내가 그래서 편집장들에게 ‘이런 기사 쓰면 광고를 어떻게 받으라는 겁니까?’라고 따지면 그 쪽 반응이 더 황당해. ‘광고를 끊든 말든 할 말은 해야죠’라나 뭐라나. 거참. 허허”
한병구 부장의 장난스러운 꾸짖음에 문정우 편집장은 익살스럽게 변명을 했다.
“아시잖아요. 시사저널 기자들은 ‘아직도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는 이상한 기자들’이라는거.”
넷째 주, 비(非)를 비(非)라 말하는 것
시사저널 기자들과의 마지막 데이트, 하지만 나는 마지막 날까지도 원하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도대체 무엇이 당신들을 그렇게 살게 만드는가. 잠을 못 자면서까지 휴일 날까지 일하고, 쉽게 쓸 수 있는 기사를 발로 뛰면서 힘들게 쓰는지, 좋은 게 좋은 건데 왜 촌지를 안 받는지. 그렇게 당신들을 고행 속에서 살게 하는 ‘신념’이 혹은 ‘기자로서의 자존심’이 무엇인지 말이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이 말이 어디서 나온 지 알아?"
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나를 깨운 것은 신호철 기자였다.같은 학교출신, 그것도 대학신문 편집장이기도 했었고 서울대 언론사이트 스누나우의 창립자.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가깝다고 느꼈던 선배였다. 잠시 생각하던 나는 이내 정답을 찾을 수 있었다.
“알아요! 네오가 현실 세계에서 눈을 떴을 때 모피어스가 하는 말이잖아요. ‘Welcome to the Real world’. 가장 인상 깊은 장면 중 하나였는걸요.”
“그래, 내가 시사저널을 처음 접했을 때의 심정이 그러했다. 1992년 내가 처음 입학한 K대학 도서관에서 우연히 시사저널의 표지를 봤었다.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데 그때 커버스토리는 ‘대권 주자들의 언론 장학생’이었어.”
“언론,,, 장학생이요?”
“그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미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기자들이 왜곡된 기사를 쓴다는 것이었지.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뉴스가 실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가공되고 편집된 것이라는 뜻이었다. 신문이 전하는 허상의 세계를 감지하고 나서 나는 어느새 시사저널의 애독자가 되어버렸다. Welcome to the Real world. 시사저널은 나에게 모피어스였고 오라클이었으며 주류 언론이 만들어 낸 매트릭스에 맞설 수 있는 해독제였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만 다루는 기사, 기득권층과 타협 속에서 만들어지는 기사는 그저 매트릭스 속에 안주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아니 우리는 시사저널 기자로 살아가는 것이다.”
‘매트릭스는 오늘도 돌아가고 네오는 모피어스가 된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는 굳은 신념이 엿보였다. 이것이 그가 기자로 살아가는 이유, 아니 시사저널 기자들이 기자로 살아가는 이유였다.
“맞는 말이다. 이번 시사저널 파업사태도 그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갑작스레 한 인물이 나타났다. 한달동안의 데이트 동안 한번도 직접 마주하지 못했던 사람. 바로 김훈이었다. 그는 멈추지 않고 말을 했다.
“이번 사태는 단지 ‘편집권은 누구의 권한인가’라는 사소한 논쟁이 아냐. 자본 권력 속에 억눌려있던 한국 언론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사건이며, 언론의 정도를 바로세우는 싸움이다. 비(非)를 비(非)라 말하는 것. 그것은 너무도 단순명쾌한 일이지만 아직까지 언론에서는 하지 못한 일이다.
30년 전, 나는 유신 정권을 찬양하는, 신군부를 찬양하는 기사를 썼다. 내가 무너졌던 30년 전 그 자리에 후배들이 서있다. 내 후배들이 다시 같은 자리에서 무너진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과연 그들은 또다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꿋꿋이 일어날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들의 역사는 만들어지고 있다.
만남의 끝, 그리고 새로운 시작
김훈의 글을 마지막으로 나는 책을 덮을 수 있었다. 얇은 책이기에 금방 읽을 수 있었지만 내 머리 속에서는 마치 한달 동안 그들과 함께했던 것처럼 또렷한 기억으로 남았다. 책을 덮고 나서 한참동안 ‘기자’에 대해 생각하던 나는 불현듯 무엇인가가 떠올라 컴퓨터를 켰다.
언론은 물이어야 한다. 뜨겁거나 미지근한 물이 아니라 얼음처럼 차가운, 칼보다 더 날카로운 물이어야 한다. 물이 사물의 빈틈에 스며들 듯이, 언론은 현실의 잘못된 부분을 날카롭게 비판해야 한다. 언론이 현실의 잘못을 짚어주지 않는다면 아무도 그 빈틈을 보지 못한 채 지나쳐버리고 말 것이다.
예전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올렸던, 아마도 고등학교에 올라가며 썼던 글. 나의 글이 세상을 변혁시킬 기폭제라도 될 줄 알았던 걸까.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뭔가 거대한 일을 해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달콤한 파란 약을 먹어버렸고 편하게 세상을 대하는 방법을 익혔던 듯 싶다.
내 나이 스물, 다시 한번 불타오르는 펜을 잡는다. 누군가가 또 나에게 묻겠지. “왜 기자가 되고 싶은건가요?”라고. 그러면 나는 주저하다가 멋쩍게 웃으며 말할 것이다. “저는 제 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바보거든요”라고.
2007.
김 훈, 박상기, 서명숙, 김상익, 이문재 등 전직 시사저널 기자와 백승기, 문정우, 남문희, 정희상, 장영희 등 현직 시사저널 기자가 함께 참여한 이 책에는 한국 최초로 본격적인 시사 주간지 시장을 개척했던 이 잡지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한국형 탐사 저널리즘의 신영역을 개척하는 한편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끊임없이 추구했던 이들의 궤적을 좇다 보면 최근의 시사저널 사태가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 유추할 수 있게 된다.
취재 현장과 편집국에서 기자들이 어떻게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지를 실감나게 엿볼 수 있다는 점 또한 이 책의 매력. 때로는 무협지처럼 흥미진진하게, 때로는 휴먼 다큐멘터리처럼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풍성한 에피소드가 책 읽는 맛을 배가해 준다.
머리말
단절된 맥박을 고동치게 하라 | 안병찬
01 시사저널의 추억
고지식해 아름다운 사람들 | 김상익
뉴스 전쟁터에서 띄우는 편집장의 편지 | 서명숙
네, 이문재입니다 | 이문재
시사저널은 어떻게 명품이 되었나 | 성우제
불발로 끝난 히로뽕 체험 기사 | 박상기
어떻게 지킨 시사저널인데 | 백승기
02 시사저널 사람들
아직도 언론의 정도를 걷겠다는 이상한 기자들 | 문정우
내가 만난 김훈과 서명숙 | 김은남
시사저널 문화부라는 곳 | 노순동
야박하고 불친절한 선배들| 안은주
03 기자로 산다는 것
수수께끼 기자의 수수께끼 같은 기사 | 남문희
열다섯 번의 특종, 열세 건의 소송 | 정희상
경제 기사, 나의 달콤 살벌한 연인 | 장영희
고춧가루 전문, 시사저널 정치부 | 이숙이
나를 주눅들게 한 공포의 리라이팅 | 오윤현
몸빼 바지 입고 스스로 표지가 되다 | 양한모
수습 기자의 행복한 시간 | 고제규
우리는 시사저널 기자이니까 | 차형석
이건희 회장의 황제 스키를 몰래 찍다 | 안희태
부록_ 시사저널 사태를 말한다
시사저널 사태 일지
김훈은 말한다 - 내가 무너졌던 30년 전 그 자리에 후배들이 서 있다
지옥에서 보낸 한 철, 아름다운 고통의 날들 ㅣ 고재열
한국 언론의 명예, 시사저널에 달려 있다 ㅣ 고종석
이우일 만화
이철수 엽서
힘내세요, 시사저널
토익 스피킹 실전 모의고사 10회
이책은 초급단계의 토익스피킹 준비자는 적합하지않구요 실전문제를 풀고자 하는 분들이 연습하기에 굉장히 좋은 책입니다. 신유형을 대비할수도 있구요 해답부분이 레벨 6 레벨7 별로 답을 정리해 놓아서 원하는 레벨을 따기에 시간도 절약해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토스가 필기구를 가지고 하지는 않기 때문에 필기구에 의존하신분들은 조금 당황스러운 시험이지만 이 책과 함께 열심히 하신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토스공부 열심히 하시고 원하시는 레
lemonjdhb.tistory.com
intermediate(중간의) , decomposed(분해된) , soot(그을음)
영어공부혼자서도가능해요열심히 영어단어 열공! intermediate ( 중간의 ) intermediate boson ( W particle )There is a Schiff base intermediate in the fructose 1 6 bisphosphate aldolase catalyzed reaction during glycolysis 당분해 동안 과당 1 6 비스포스페이트 알돌라제 촉매 반응에 쉬프 염기 중간체가 있다Morphological
gfwcu.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