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세계화 및 다양한 문화와 사람들이 교류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에 학교 교과서의 첫 페이지에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라던지, 또는 본문에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이다"와 같은 문구가 삭제된 지도 꽤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여러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어느새 우리 사회의 일부에 자리잡고 있고, 그들과 앞으로 더 평화롭게 공존 하는 미래를 지향하자는 교과서적인 이야기가 교과서에 담겨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찜찜한 구석이 없잖아 있다. 다문화, 인권, 포용 등의 수사는 현재형이라기보다는 미래형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들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야 한다고 교과서나 대중 매체에서 언급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동남아 , 아프리카 등의 지명과 비하적인 수식어가 결합된 채 묘한 공존을 하기도 한다. 특히 2018년 예멘 난민들이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 글로벌 시민으로서 난민을 포용해야 한다는 낭만적 박애주의는 물론, 예멘 난민들과 이슬람 문화에 대한 혐오 감정도 동시에 폭발했다. 이쯤에서 궁금한 것은, "외국인 이주자들이 우리나라에서 정말로 왜 왔으며, 어떻게 지내고 있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이다. 언어도 문화도 다른 그들이 혹시나 우리에게 불편한 소리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진정한 목소리에 관심을 굳이 가지지 않았다. 이미 이주한 지가 오래인 그들은 우리 사회에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다고 느끼는지, 또한 우리와 그들이 지금처럼 지내면 평화롭게 공존 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 문제의식만 있었을 뿐, 이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글이 제한적이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추상적 수준에서 인권, 포용, 세계시민성 등을 운운하는 것보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우리나라의 이주민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책을 알게 되었다. 저자는 인류학자이고 우리나라에 온 이주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듣는 연구를 꾸준히 수행해 왔다. 여러 이주자의 다양한 삶과 목소리를 들으려는 시도가 적기에, 이러한 저자의 연구를 담은 이 책이 반가웠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에서는 세계화, 이주민 증가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상황과 원인을 새로운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왜 저자가 이주민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직접 듣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지극히 폐쇄적이었던 한국 사회는 1990년대 세계화 시대 를 선언한 김영삼 정부 이래, 2005년 노무현 정부의 다문화, 다민족 사회로의 이행 선언까지 전 세계의 개방적인 흐름에 적극 동참했다. 한국 사회는 이주자의 존재로 사회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무엇보다 견고한 국민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고 이주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우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촉발되었다. 기존에 당연하다고 여겨온 한국인 이라는 개념 또한 새롭게 정의되고 있다. 문화적 다양성이 사회의 활력소이고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어낸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은 지금껏 한국 역사에서 깊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일이다. 이 때문에 이주자의 존재는 여전히 생소하고, 물샐 틈 없는 방어벽을 뚫고 우리 안에 들어와 있는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외국인 범죄 증가와 이주자 집중 거주지의 우범지대화에 관한 뉴스는 한국인의 적극적인 방어 본능을 자극한다. 선주민과 이주민은 문화 접경지대에 살고 있다. 레나토 로살도는 문화 접경지대는 견고한 경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사람들에게 접경지대 히스테리 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p.33). 이를 위해 이주자 경관과 이주자 정동(migrant affect)을 다룰 것이다. (...) 이주자 정동이란 한국에 온 이주자가 일터, 가정, 지역사회 등에서 정보와 감정을 어떻게 체험하고 이해하는지, 이주자가 선주민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를 통한 이주자의 정서 구성과 행동능력 변화를 뜻한다. 한국 사회는 지속적인 경제 발전과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자를 필요로 하지만, 이들에게 공정한 사회적 장소를 제공하지 않은 채 손쉬운 방식으로 불러들여 대우하고 있다. 주변자의 영역 에 이주자를 격리하고 모른 척하면서 이들을 유용한 자원으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리라 믿었지만, 이주자 역시 행동하고 해석하는 행위자로서 한국 사회에 지속적으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p.35)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한국에서 이주자로 살아가기 는 이주의 현실과 문제를 점검하고, 이주자가 한국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10년간의 인터뷰를 통해 기록함으로써 우리 가까이 있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인 이주자에 대한 적확한 이해에 도달하고자 한다. 지금 같은 세계 자본주의 체제가 큰 틀에서 변하지 않는다면 이주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진행될 것이며, 한국도 이주자를 지속적으로 유입할 것이다.
21세기에 접어들어 다문화 담론이 정책적으로 채택되었다고는 하지만, 한국 사회가 외국인 이주자라는 ‘타자’를 수용한 적이 있는 이주 수용 국가가 아니었음을 상기한다면, 이주자 문제를 논의하지 않고서는 전환기의 흐름에 윤리적으로 부응할 수 없을뿐더러 민주주의의 영토를 확장할 수 없다. 이 책은 이주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경제질서에 속한 한국의 현실을 점검하고, 단일문화에서 다문화로 진전할 수 있는 사회적 감수성이 무엇인지를 이주자의 삶과 일을 정직하게 묘사함으로써 탐색한다. 이를 통해 이주 문제와 이주자 권리가 어째서 ‘우리’의 문제인지를 논구한다.
머리말 집 떠난 자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1부 이주의 현실과 배경
이주는 왜 일어나는가, 이주자는 누구인가
이주자의 나라, 한국
산업구조의 재조정과 경제 이주자
사회적 재생산의 위기와 그 해결
질문과 응답
한국의 이미지와 이주의 현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 위하여
2부 한국에 사는 이주자의 삶과 일
송금과 사랑: 베트남 결혼이주 여성의 가족 만들기
한국에서의 생활지침서
왜 국제결혼을 선택하는가?
관광형 맞선
꿈이 다른 사람들끼리의 가족 만들기
송금과 사랑
역이주, 생존의 위기에 대한 초국적 대응
유보된 꿈과 글로벌 가족 만들기의 경계
‘불법 사람’의 성실 인생: 미등록 이주노동자 라이 씨 이야기
보따리에 담긴 한국 생활 22년
가수를 꿈꾸던 청년에서 ‘불법 사람’이 되기까지
장거리 사랑과 글로벌 가족
‘불법’에 대한 비용
‘성공’한 이주노동자, ‘실패’한 이주노동자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사회적 장소
나의 집은 어디인가: 조선족 동포의 고향/타향살이
우리 가까이 그러나 보이지 않는
흩어지고 모이고, 개척민 정신
아래로, 아래로, 하향 평준화되는 삶
한국은 ‘제 살 깎아 돈 버는 곳’
‘성공’과 ‘나쁜 습관’
황해 와 보이스피싱
나의 집은 어디인가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선택받은 자, ‘운’ 좋은 뭉크졸 씨
선진적인, 너무나 선진적인
다문화적 환경으로 진화하는 작업장의 사례
이중의 피해자, 여성 이주노동자
이주노동자는 이 땅에서 정주할 수 없는가
유보된 삶에서 지속가능한 삶으로: 버마 난민 이야기
보트피플, 추방된 사람들
유보된 삶의 고통
버마 엑소더스
정치 난민 탄민우 씨와 버마 공동체
소수자 난민 하이디 씨가 얻은 자유
유보된 삶에서 지속가능한 삶으로
난민 논쟁, 배제의 정치와 미래의 민주주의
아이의 눈으로: 이주 아동/청소년의 성장기
두 번의 생일잔치
신분 없는 아이
갈라지는 희망과 기대
한국 사람으로서 꿈꾸기, 소수자로서 희망 조정하기
3부 국민국가 너머의 시민권을 향하여
다시, 다문화주의란 무엇인가
당신처럼
열린 텍스트로서의 다문화주의
결혼국가, 한국 다문화 담론의 동화 이데올로기
아래로부터의 다문화주의
상호 영향과 사회 통합
이주자 권리는 왜 ‘우리’의 문제인가
누가 이주 문제를 이용하는가
유럽의 요새화 전략과 정치적 퇴행
반이주 정책과 ‘호의적’ 방관이라는 모순
이주자는 어떻게 관리의 대상이 되었는가
이주자 권리는 왜 ‘우리’의 문제인가
우리는 모두 집을 떠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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